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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옥 수필작가

지구가꿈 2016. 8. 5. 15:26

자랑스러운  신수옥 선생님 을 소개합니다

선생님은 <한국수필>2014년 7월에 수필가로 등단하셨고

그해 <문학나무>가을호에 시 부분 당선되어 등단하셨습니다

수필가이시며 시인이십니다

 

시 부분 당선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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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타임 외 4편

신수옥

도드라지게 아름다웠죠 벌들의 박수소리에

목을 너무 곧게 세웠나 봐요 가장 화사한 순간

단숨에 허리가 꺾여 두툼한 장정의 관 속에

곱게 뉘였죠 검은 활자들이 엄마, 엄마 부르며 달려들었어요

목마른 활자들을 끌어안고 젖을 먹였죠 나의 피는 서서히 흘러나 가

한 페이지의 텍스트로 굳어갔어요

납작 눌려 살아라, 당부하던 당신의 목소리 아주 잦아들 무렵

어둠이 열리고 눈부신 세상이 이마를 어루만졌어요

나는 이미 젖줄이 말라버린 미라 다른 미라들과 함께

투명유리관으로 이장되었죠, 부족의 이름은 압화(押花)

다시는 꺾이지도 짓눌리지도 않을

검은 압박붕대로 눈을 동여맬 일도 없을 시즌 2

철없이 피어나는 숱한 감정 향기마저 놓아버린 건

아니었어요, 발자국소리 모여드는 어느 봄날

시즌1의 빛깔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나요

유리벌판으로 바람이 불어와요 푸른 나비떼 날아들어요

부스스 피가 돌아요 젖이 돌아요 허리 아래 환상통이

뭉클뭉클 살아나는 압화, 아파, 아파요

통증은 얼마나 아름다운 실존인가요

 

 

석양을 품다

저 두루뭉수리 속에 무엇을 들어앉혔나

의중을 알 수 없다

지구를 깔고 앉아 고운 시절 다 보내고

무슨 고집일까

아직도 일어설 생각을 않는다

탱탱한 피부 적당한 체중일 때 금값 받고

길 떠난 친구들 다 보낸 시월 텃밭

무릎 한 번 펴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다

여름내 남모르게 태양을 끌어안은

오직 그 붉은 마음으로 계절을 건너왔다

저 깊은 속내 얼마나 푸근하고 따사로울까

셀 수 없는 어린 우주들이 가득 엉겨 붙어

이제 스스로는 차마

중력을 거스르는 일이 불가능하리라

꼭지 가까이 질긴 탯줄을 자르고

안반만한 붉은 호박을 들어 올리자

꼭 들러붙었던 지구가 태반처럼 철퍼덕 떨어져나간다

구십삼 년 한 생이 방석위에 푹 퍼져있다

일흔 살 아들이 힘겹게 안아 올려 양지쪽에 앉힌다

호박씨처럼 엉긴 사연들 오물오물 다 닳은 잇몸사이로

줄줄 흘리다 꼬박꼬박 졸다 비스듬히

기운다, 오후 한때가 왈칵 엎질러진다

사막을 건너오는 시간

스스로 빛이 되어야 빠져 나갈 수 있는 통로

당신 혼자 캄캄한 사막을 헤맬 때

누구도 손 내밀 수 없었어

당신은 매일 장미꽃다발을 들고 왔지

모래바람인지 눈보라인지 가늠할 여유도 없을 때

나에게 내밀던 붉은 장미를 받으며

늑골 아래로 쏟아지던 함박눈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망울

장미를 움켜쥐고 당신을 끌어안았지

장미가시에 깊숙이 찔린 약지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핏방울, 동공을 가득채운 슬픔을 읽는 시간

등 뒤론 거센 눈보라가 지나가고 있었어

어디서 끝날지 모르는 사막

그리고 날마다 늘어나는 꽃다발은

내게로 와서 자꾸 시들어 가고

당신이 맨발로 사막을 건너오는 시간

초인종이 울리면 가슴으로 걷잡을 수 없이 피어나던

장미, 장미, 핏빛 장미

 

 

어떤 건축법

그는 신개념 건축학자

터를 파고 고르고 주춧돌을 놓는 것

그의 교과서에는 없다

톱 망치 줄자, 어떤 연장도 필요 없다

집이 꼭 수평일 필요도 없어

비스듬히 지은 집

무심한 바람에 흔들리는 떡갈나무

파르르 떠는 잎사귀, 귀에 대고

끈적한 귓속말을 이어간다

사람들의 입김 사라진 폐가는 안방도 곡간도

집짓기 좋은 장소

어디에라도 집을 지을 수 있는 기술이 놀랍다

풍문으로는 산 사람 입에도 집을 지은 적 있다고 한다

천정에 오를 때도 사다리 따위 필요 없다

자일은 항상 몸속에 있으니까

청사진도 필요 없다

선험에 새겨진 원주율만이 유일한 공식

잘룩한 허리 아래 출사돌기에 가득 찬 자재를 차분히 뽑아쓴다

방사실과 나선실이 만나는 곳에서 매듭 하나 생긴다

터키 갑바도키아 카페트 공장

다 헤아릴 수 없는 매듭을 엮어가느라

가늘고 긴 팔이 쉴 새 없이 오르내린다

샤리를 두른 까만 눈동자의 소녀

비스듬히 세워놓은 낡은 직조틀 앞에

앉은 채로 거미가 되어간다

숨바꼭질

술래는 눈감고

아이는 달음질쳤다

부지런히 대청마루 돌아

굴뚝 뒤에 쪼그리고 숨었다

저녁 짓는 연기로 따듯해진 굴뚝에

살며시 기대었다

나직이 피어있는 민들레꽃

감기는 눈꺼풀을 밀고 눈동자에 들어왔다

아이의 잠 속에

꽃에 앉았던 작은 흰나비도 따라 들어왔다

흰나비 날아올라

먼 하늘가로 기억을 더듬어 날아갔다

수백 년 흘러온 그 길을 여전히 찾을 수 있다니!

연둣빛 벌판을 뛰어다니던 여덟 살 상고머리 소녀가 알아보고

이리 와, 손을 내밀었다

소녀의 손바닥 위에 날개를 접고

흰 나비, 잠들었다

2014년 《문학나무》 가을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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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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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화학과 졸업. 同 대학 대학원 박사과정 이수. 이화여대, 서울산업대 강사 역임. 2013년 4월 《한국수필》 등단. 2014년 7월 수필집 『보석을 캐는 시간』 출간. 2014년 《문학나무》 가을호에 시부문 당선되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