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면 옛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수많은 사연중에 지금도 내 마음에 서러운 아픔의 추억...
내가 열네 살 소년 시절, 누님이 친정에 오셨다.
충주에서 피난 내려와 낙동 친척집에 1년간 머물던 젊은이와 내 아버지가 얘기가 되어 그 젊은이 다시 충주로 올라가며 누이도 그이 따라 시집 간 지 3년... ‘입 하나라도 줄이고 저라도 잘 먹겠지’ 하는 아버지 생각으로 보냈던 딸이었다. 그 누님이 시집간 지 3년 만에 친정에 오셨다. 등에 2살 된 아이를 업고...
그간 얼마나 친정에 마음이 쓰였을까... 시집가기도 전에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 홀아비와 어린 동생 둘이서 끼니를 이으며 사는 친정집이... 결혼 후 한시도 마음에 떠나지 않았으리라.
이틀을 묵고 10리밖 친척집으로 떠나는 날, 어제부터 내리던 눈이 온 세상 두텁게 덮힌 들판 위에 오늘도 내리고...
누님이 가는 길은 가로질러 가는 휑하니 뚫린 들길이다.
어찌된 일인지, 떠나는 누이를 나 혼자 배웅하며 아마도 ‘누우야, 잘 가그레이’ 하고는 더 말하지 못했다. 이틀 밤새 콜록거리던 두 살배기 조카 약 사줄 돈도 없어 그냥 보낼 수밖에 없는 마음... 머리맡 물사발이 얼어터질 정도로 온기 없는 집에 더 머물기도 마땅치 않아 떠날 수밖에 없는 누이의 마음...
무너지는 심정’을 처음 느꼈구나.
눈은 여전히 내리는데, 그 자리에 서서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가는 누님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윽고 희끄무레한 눈발 사이로 누이가 한 점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할 때까지...
볼에 흘러 언듯한 차가운 눈물자국을 느끼며 쓸쓸히 발자국을 돌린 기억이 53년이 지난 오늘의 눈(雪)에서도 또렷이 기억할 수 있다. 매우 아프면서도 그리운 추억, 이제는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애잔한 추억으로 느껴진다.
내가 언제나 그리워하는 누님. 얼마 후면 나의 참 좋으신 형수님 생신을 맞아 삼남매 사는 중간 수안보 온천에서 만나 온천도 하고 맛있는 점심도 형님께서 사 주신단다. 참 즐거운 만남. 슬프디 슬펐던 기억이 아름다움으로 바뀌는 날. ‘누님 2월 28일 오전 10시에 수안보 온천에서 뵐게요.’
입춘이 3일 지난 오늘, 온 세상이 눈(雪)으로 아름답게 변해 있다. 봄의 마지막 눈(雪)을,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를 눈(目)으로 감탄하며 감상한다.
아, 하나님! 당신은 참 아름다우십니다. 이 아름다운 질서를 명하시고 호말(毫末)도 어김없이 진행되는 변화가 우리들 눈 앞에 전개되어가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녹색의 향연이 우리 눈에 비춰질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도하는 마음...
2006년 2월 7일
(혼자 보기 아까워 오늘 내린 눈 정경을 사진에 담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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