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바닥

지구가꿈 2022. 6. 3. 19:11

2022년 5월 25일 바닥이라는 수필집을 내셨다

시인 손옥자 선생님 께서는 

10년간 생전의 가수 이남이 선생님과

교도소와 군 부대 에서 시 강의를 하셨다

그를 토대로 

"참 오래걸렸다

생각이 많았다 쓰기도 전에 멈추었고 .멈추어선 한참을 다시 생각하기를 여러번 하였다."

작가의 말 첫번째 말씀이다

 

시작말씀 담을 여기에 옴긴다

 

통 여주인이 거처하는 안채를 감예산 고택에 가면 헛담, 혹은 내담이라고 하는 담을 만날 수 있다 내담은 보싸고 있는 담인데, 바깥과 경계 짓는 큰 담 안에 있다. 바깥주인이 안주인을 기다릴 때, 내담 밖에서 헛기침을 하는데 , 그 헛기침은 나는 와 있고, 천천히 나오시오라는 말의 뜻과 같다. 안주인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기다리라고 가르쳐주는 담, 그것이 내담이다

 

그래서 내담은 빗장이 없다. 빗장이 없으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고, 스스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담, 재촉하거나 채근하지 않는 담, 그것이 내담이다

 

내가 교정시설의 첫 담을 만난 건 2008, 매화꽃이 막 필 무렵이었다. 9척이라고도 하고, 15척이라고도 하는 춘천교도소의 처음 본 담은 높았다 그 높다는 회색 담에는 커다란 나무가 몇 개의 이파리를 떨어뜨리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교정시설인데 희망적 그림이 아니라 낙엽이라니....... 지는 잎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작가의 어떤 의도가 있겠지 생각하면서, 바깥 철대문 앞에 섰다. 철대문은 생각보다 냉정했다.

 

철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로 또 철문이 가로막았다. 신원을 확인하는 곳 이었다. 우리를 인도하는 교도관도 스스로 열지 못하고, 누군가 열어주어야 만 나갈 수 있는 문인 것 같았다. 한참 기다린 후 드디어 어두운 군청색 철문이 열리고 안마당으로 들어서니, 햇살이 쏱아졌다. 잠시지만 역시 밖이 좋았다.

 

교도관과 함께 다시 본관 현관에 들어서자, 지하로 급하게 내려가는 수용자를 만나고, 머리를 숙여 목례를 하니, 수용자도 당황한 듯 고개숙여 인사를 하였다. 열 걸음쯤 갔을까? 미닫이로 되어있는 제법 큰 철문을 다시 열고 들어서니, 넓은 복도 (여기서는 중도라고 불림)가 나왔다. 밥 차인 듯한 큰 수레를 끄는 수용자와 교도관이 우리의 왼쪽으로 지나가고, 우리는 오른쪽으로

넉넉하게 지날 정도로 복도는 넓었다.

 

넓고 긴 중도는 햇빛이 들지 않아서인지 추웠다. 같이 동행한 이남이 선생님( 가수)은 밖의 온도보다 3, 4도가량 낮을 거라고 했다. 전에 수형자로 감옥에 있을때도 으슬으슬 추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이 많아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고.” 하면서 웃었다 두개의 철문을 더 열고 몇 개의 계단과 좁은 복도를 더 지나서야 우리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수용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열두명이던가? 수용자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푸른 수의를 입고 있었고, 그중 한 명은 황토색 수의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강의실로 들어설 때 우리를 슬쩍 쳐다보더니, 우리가 막상 강단 위에 서니, 시선을 다른데로 돌렸다. 가능한 한 우리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 보였다.

 

나는 우리가 여기에 왜 왔는지를 잠깐 설명하고, 이남이 선생님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나는 여기가 고향이예요

그들이 갑자기 이남이 선생님을 쳐다 봤다.

나도 여기서 좀 있어봐서 아는데, 여기가 얼마나 따뜻한지 잘 알아요,”

그들이 웃었다.

나는 오히려 여기가 내 집같이 편안해요.”

그들의 얼굴이 다소 밝아졌다.

그들은 두 시간 내내 듣기만 하였다. 일어서라면 일어서고, 앉으라면 앉았다, 대열을 바꾸라면 바꾸고, 읽으라면 읽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았지만, 그러나 우리는 기침을 하여야 하고, 내담 밖에 우리가 와 있음을 알려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반응할 때 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들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다소 멀긴 하지만, 나는 담양에 있는 소쇄원을 자주 간다. 평소에는 갈 때마다

정자에 마음을 뺏겨 다른 것을 볼 겨를이 없었는데, 지난 여름엔 대봉대에서 제월당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토담밑을 보게 된 것이다.

 

, 담의 밑이 뚫려 있었다.

 

담의 밑을 뚫어 놓다니 ...... , 담은 가리고 막는 것이 본래의 기능인데, 안과 밖을 경계짓는 것이 담의 기능인데, 그 담이 발을 살짝 들어올려, 밖에서 들어오는 물이 막혀 막막하지 않도록 문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 신기한 아름다움에 말문이 막혔다. 그것도 오랜 세월 물이 흘러서 물이 스스로 길을 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밖에서 흐르는 물이 막히지 않도록 담의 밑을 들어올려 물이 그대로 잘 흐를 수 있도록 길을 내주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소통이었다. 소통. 그것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여는 것이다. 그 길은 안 된다고 막어서는 것이 아니라, 비켜주는 것이다. 배려하고.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곡문(五曲門)을 지나는 물은 맑고 깨끗했다. 그리고 급히 흐르지 않았다. 물은 다섯 번 부드러운 곡선을 그으며, 느리고 조용히 흘러내렸다.

 

정호승 시인은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리라고 했다. 흙의 가슴이 따뜻해 지기글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수형자들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들 가슴에 쌓인 눈이 녹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나와서 다시 본 9척 담벽 낙엽은 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 나올 초록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스스로 내려온 거라는 걸 깨달았다. 껍질, 단단하지만, 세상, 그리 만만하지 않지만, 초록은 마른 가지 잘 열고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뾰죽뾰죽, 그 예쁜 주둥이로 봄을 물고, 영차영차 따뜻한 계절, 열심히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저기 벌써 초록이다.                                                                                                                                                

시인 손옥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0년간의 작업임에도 부끄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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